추락과 부활의 미학
  • 김준연산업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
날짜2016.01.27
조회수9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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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경제성장도 어렵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2016년 새해를 시작한다.
    • 나라 살림도 문제지만 국민의 삶도 걱정이다. 2015년 가계신용, 즉 개인이 빌린 돈이 무려 1,166조를 기록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수치의 45% 이상이 소상공인이라는 점이다. 소상공인은 창업의 아이템이 거기서 거기인데다가 전문성이 떨어져서 90%가 3년 내에 망한다고 한다. 나머지 65%는 살던 집을 은행에 저당 잡혀 빌린 주택담보대출이다. 일자리는 어떤가? 작년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2%를 기록했다. 돈도 없고 일거리도 없는 상황에서 만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나라나 개인이나 버틸 능력이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제조업도 작년 처음으로 매출액 증가율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한국은행은 작년 말에 3.2%로 성장률을 잡았다가, 새해 들어 정부 예상치(3.1%)보다는 낮게,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2.8%), 한국경제연구원(2.6%), LG경제연구원(2.5%) 보다는 높은 3%로 조정했다. 뚜렷한 회생의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연말에 또 한 차례의 조정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 사실 저성장의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던 대만의 경우, 중국의 부상으로 가장 많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2016년 경제성장률을 1.84%로 전망하고 있다.
    • 도대체 성공한 신흥경제라던 한국과 대만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가?
    • 먼저 대만부터 보자. 우리에겐 팍스콘으로 알려진 홍하이정밀공업의 경우, 제조공장이 다 해외에 있어 정작 대만의 고용에는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이를 홍하이병이라 한다. 최근에는 샤오미의 OEM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애플의 핸드폰을 조립해서 유명해진 HTC는 OEM방식의 핸드폰 제조에만 눌러앉아, 샤오미가 핸드폰에서 출발해서 체중계, 배터리, 자전거까지 만들며 다각화하고 있는 상황과 비교되곤 한다. 이를 HTC병이라 한다. 한때 잘나가던 OEM방식만 고수하다가 중국이 따라잡으면서 기회가 오히려 재앙이 되고 있다. 대만의 문제는 그간의 방식(OEM)만을 고수하다가 독자 브랜드도 실패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도 실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제 우리 한국은 어떤가?
    • 우리는 대만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브랜드의 삼성 핸드폰도 있고, 현대기아 자동차도 건재하다. 철강도 포스코가 잘 버텨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대만은 OEM이라는 방식을 못 벗어서 이 지경이지만, 우리는 연극이 달라져도 배우가 똑같은 것이 문제다. 삼성은 애플에 치이고, 화웨이와 샤오미의 저가 공세에 끼어 있는데 다른 삼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의 태슬라, 유럽의 자동차 군단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중국의 자동차 기업에 맞서 현대기아차는 홀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끝인 게 정말 문제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역동성의 상실이라는 병에 걸린 거다.
    • 역동성의 상실은 SW산업이 더 심각하다. SW산업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톡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한컴과 티맥스가 있어 국내에서 MS워드와 오라클을 덜 사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뿐이다. 이들이 안방시장에서 이들끼리 만의 리그를 하다 보니 티맥스, 한컴, 안랩으로 대표되는 국내 대표적인 1세대 성공 벤처들의 공공시장 매출 비중은 과도하게 높은 반면 정작 이들의 수출 비중은 2%가 채 안 되고 있다. 이들이 1,000억 클럽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자랑할 자격이 있냐는 질문이 든다. 네이버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국내시장을 70% 이상 장악하고도 검색 이외에 대안이 없다. 라인은 일본 기업이니 네이버는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거다. 수년 전에 한 수 배우겠다고 방한했던 텐센트가 이제 게임산업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상황과 너무나 비교된다.
    • 지금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양대 파워는 미국과 중국이다. 최근 홀로 잘 나가는 미국은 디지털경제로 대변되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인터넷기업이 견인하고 있고, 심지어 한때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던 제조업마저도 귀환하는 리쇼어링(re-shoring)으로 부활하고 있다. 워낙 잘나가던 미국은 그렇다 치고,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은 언론에서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하느냐 마느냐에 이슈를 제기하고 있지만, 이건 중국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중국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음성적인 소비를 줄이고 있으며 부동산 경기도 조정하고 있어 지금의 성장률은 중국이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중앙아시아와 중국 내륙의 인프라 건설을 위해서 아시아인프라은행(AIIB)을 설립했고,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산아제한을 풀었으며 앞으로 거주 이동의 제한도 곧 철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중국은 아직 쓸 수 있는 카드가 많다. 그리고 보다 더 희망적인 사실은 중국 경제에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기업이 자주 출현한다는 것이다. 알리바바에 대항해서 JD.Com이 등장했고, 바이두에 대항해서 치후360이 등장했으며, 샤오미를 누르고 등장한 화웨이를 다시 원플러스와 같은 후발 기업이 다시 위협하고 있다. 텐센트, 바이두, 알리바바 그리고 치후360 등 수많은 중국 기업들은 그들 간에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새로운 영역과 신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이러한 역동성이 중관촌에 퍼져 이들의 성공을 배우겠다고 줄을 선 창업 청소년들로 붐빈다. 역동성은 전염성이 높다. 7%의 중국이 걱정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들의 역동성이며, 한국의 앞날이 우려스러운 것이 바로 이 역동성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어디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 해답은 당연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도전해야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해답은 우리가 그간의 성공을 일궈낸 산업과 그 성공의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한때 우리 경제를 지탱하던 산업 중에 신발산업이 있었다. 부산을 중심으로 세계의 신발공장이 형성되어 경제를 발전시켰던 산업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계속 하락해서 1980년대 이른바 ‘사양산업’이라고 치부되었고 중국과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시켜 국내에는 제조기업과 숙련공 그리고 생산액이 급감했었다.
    • 이 산업이 부활해서 다시 돌아왔다. 지금 누가 신발공장이 국내 1조 클럽에 가입했다고 하면 믿겠는가? 그런데 태광실업이 그렇다. 2015년 매출액이 1조 3천억이 넘는다. 태광만 그런건 아니고 2위 기업인 창신INC도 9천 6백억 원을 기록했다. 규모가 좀 작은 트랙스타는 작년 영업이익률이 129% 증가했고 ㈜화승도 125% 증가했다. 심지어 원래 신발 제조가 아니었던 파크랜드 같은 기업도 신발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죽었던 산업이 이렇게 부활했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국내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이전했던 중국과 베트남 경제가 부상하면서 그에 따라 물가가 상승하고 노동임금을 끌어올려서 그에 따라 생산비용이 상승한 것이다. 산업과 경제가 부상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중국, 베트남 같은 신흥시장도 마찬가지다. 가격만 가지고 승부하던 이들의 경쟁력도 물가가 상승하면서 소진되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잘나가는 신흥경제가 계속 잘 나갈 수 없는 이유이자, 추락했던 경제가 다시 부활하는 원리이다. 그리고 기술은 이 추격과 추락을 촉진하고 반전시키는 촉매가 된다.
    • 원래 신발산업은 재단, 재봉, 제조를 각각 다른 공장에서 처리한 후에 이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생산했었다. 그러다 보니 중간 생산물 간에 물류도 비용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센서기술과 이를 통제하는 SW로 데이터를 수집, 통합, 처리하는 자동화된 한 개의 라인에서 이 모든 공정을 처리한다. 과거에 실제 샘플을 제작해서 비교하던 디자인도 SW로 한다. 제작에 필요했던 중간 과정과 물류조차 간소화됐다. 이제 SW기술만 잘 적용하면, 켤레 당 생산원가가 중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해졌다. 게다가 복숭아뼈 안과 밖 재질의 두께를 몇 mm로 해야 사용자의 편안함이 높은지와 같은 암묵적 지식과 경험은 한국에서 찾는 게 더 빠르다. SW기술을 다룰 줄 아는 신발장인과 숙련공이 승부의 관건이 됐다. 새로운 SW기술과 신발산업에서 축적된 숙련과 경험이 작업의 방식을 바꾸고 작업장을 해외에서 국내로 바꾸고 시장에서의 성패도 결정하고 있다. 연관 효과도 있다. 신발 제조공장이 잘 되니까, 덩달아서 신발용 부직포, 접착제, 고무 밑창 생산기업도 잘 나간다. 한영산업이 그 예이다. 이 기업은 국내에 공장을 신설하면서 중국 공장은 곧 폐쇄할 예정이다. 천일상사와 학산 등과 같은 관련 기업들도 부산에 공장 부지를 구하느라 바쁘다. 이러한 효과는 디자인과 마케팅 그리고 유통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신발은 각종 센서가 부착되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신고 다니는 SW’로 진화하고 있다. 사라졌던 경쟁이 다시 부활했다. 경쟁의 방식을 SW로 가져가며 품질을 올리니, 그간 가격으로 경쟁했던 중국과 베트남이 두렵지 않다. 우리가 원래 잘했던 산업에 SW기술을 도입해서 경쟁의 공식을 바꾸니 중국과 같은 추격자가 오히려 추락하고 우리가 다시 뛸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부활이다. 필자는 추락하는 한국의 해법을 부활한 신발산업에서 보고 있다.
    • 2016년 새해에는 더 많은 산업이 부활하길 바란다.